꿈 많은 쓰는 사람

종이 사이사이 기록을 채워 노트 한 권이 완성되듯, 소소문구의 생일마다에는 쓰는 사람이 있습니다. 11번째 소소문구 생일을 맞이해 네 명의 쓰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한 장 한 장 채워진 기록을 함께 보고, 그들의 쓰는 생활을 들어봤습니다.

❶ 13년 차 건설회사 엔지니어 아코더 @archoder


쓰는 사람,  아코더입니다. 문구와 다이어리 쓰는 것을 좋아해서 블로그 ‘월간 어른의 다꾸’를 3년간 운영하고 있어요. ‘다꾸’하면 떠오르는 귀염 뽀짝한 기록은 아니고, ‘어른이 된 내가 쓰는 다이어리’같은 블로그에요. 누군가를 돕는 기록을 좋아해서 시작했어요. 노트, 필기구 사용 후기와 저만의 기록 법을 나누고, 소통하며 함께 쓰는 생활을 이어갈 수 있게요. 매달 업로드하다 보니 어느덧 게시물이 40개를 향해 가네요. 


어머니께서 달력이나, 주보 혹은 작은 수첩에 무언가를 자주 쓰시는 모습을 보고 자랐어요. 연말에 다음 해 계획을 다 같이 둘러앉아 쓴 기억도 있습니다. 어머니 영향도 분명히 있었겠지요. 어른이 된 제가 본격적으로 #쓰는생활 을 한지도 마침 13년 차네요.


Q. 소소문구는 언제 어떻게 알게 되셨나요?
2020년 11월, 아임디깅 전시를 통해 알게 되었어요. 평일 연차를 쓰고 홍대 문구소품샵을 이곳저곳 둘러보다가 스탠다드 에이 건물에 붙어있는 포스터를 보고 들어갔어요. 아날로그 기록을 하고는 있었지만, 아임디깅 전시를 보고 나서 ‘아, 기록. 조금 더 힘 빼고 써도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남았어요.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달까요. 자유롭게 붙이고, 틀에  구애받지 쓰지 않아도 되고, 꼭 다 채우지 않아도 ‘기록’이 되더라고요. 

Q. 소소문구 제품 중 하나를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여러 제품을 사용하고 있는데, 그중 펜슬캡을 써보고 좋아서 지인께 선물했던 기억이 나네요. 30년 가까이 교회 성가대에서 지휘를 맡아주셨던 분인데요. 음표가 각인된 이 펜슬캡을 선물 드렸어요. 어떻게 이렇게 꼭 맞는 선물을 골랐냐며 좋아해 주셨죠. 최근엔 디깅노트를 공부용으로 쓰고 있어요. 13년 차 엔지니어지만, 배움에는 끝이 없더라고요. 


Q.업무를 위한 공부를 하신다니 대단해요.
시니어도 모르는 게 많아요. 제가 담당하는 설계 분야의 새로운 용어를 주로 공부하죠. 디깅 노트는 내지가 왼쪽 오른쪽 구분이 되어 있잖아요. 모눈칸엔 용어들을 쓰고, 빈 칸에 초록색 펜으로 관련 정보와 인사이트를 간략하게 적어요. 




Q. 작년 봄, 문래동 재미공작소에서도 뵈었지요. 당시 베리띵 노트를 엔지니어링 업무에 쓰고 계신다고 하셨는데, 무엇이 쓰여 있나요?
엔지니어들은 신입 사원 때 그래프 페이퍼 Graph Paper를 배포 받아요. 쉽게 말해 ‘방안지’인데요. 얇고 탄력이 없는 종이라 뒷비침을 생각했을 때 아무 펜으로 쓰기에 썩 좋진 않아요. 그런데, 베리띵 노트는 커버도 튼튼하고, 크기도 적당하고, 또 내지의 양도 많아 들고 다니며 스케치하기 좋지요. 주니어 때만큼 빈도가 잦진 않지만, 시니어 엔지니어도 스케치하며 고민하는 일은 꼭 필요한 작업인지라 틈틈이 쓰고 있답니다.

Q. 베리띵 노트가 이렇게도 쓰일 수 있다니! 새로워요. 

저의 업무를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화학 공장 설비들의 설계 데이터를 검증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펌프나 저장 탱크, 공장에서 가장 우뚝 서 있는 스택 등에 대한 상세 데이터를 계산하는 일이에요. 설계하며 생기는 고민을 글과 스케치를 베리띵 노트에 써요. 시니어 엔지니어지만, 가끔 판단이 바로 안되는 경우도 있어요. 연차가 쌓이다 보니 혼자 힘으로 마무리 지어야 한다는 책임감과 부담감이 있지요. 그럴 때, 베리띵 노트는 ‘시니어의 고민을 들어주고, 판단을 도와주는 노트’예요.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어려움이 생길 때, 방향성과 해결 방안을 찾을 수 있어 손이 자주 갑니다.



Q.‘시니어의 고민을 들어주는 노트’ 라니, 중요한 역할이네요. 다른 모눈 노트들과 어떤 점이 가장 다른가요?

먼저, 끈과 안쪽 주머니 같은 디테일이 보관하기에 좋아해요.  두 번째로 일반 모눈 노트 간격(5mm)과 달리 더 촘촘해요(3mm). 수영에 비유해 볼게요. 무지 노트는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허우적거리는 거고, 베리띵 노트엔 잡을 데가 있다고 알려준달까요. 선을 과감히 그어도,  촘촘한 모눈덕에 선이 똑바로 잘 그어져 지면 위를 헤엄치죠. 







Q. 
그래프 페이퍼라는 엔지니어들의 노트가 있지만, 엔지니어분들이 좋아할 만한 베리띵 노트의 포인트들이 있을까요?
그래프 페이퍼는 제본이 약하고 표지와 내지 구분이 딱히 없어요. 베리띵 노트는 튼튼한 비건레더 표지가 내용을 잘 보호해서 오래 쓸 수 있어요. 뒤표지가 도톰해 외부 현장에 나가 스케치할 때도 적합해요. 특히 제게 가장 유익한 디테일은, 내지 상단의 이 두 줄이에요. 첫 줄에는 날짜, 둘째 줄에는 주제를 쓰고 스케치를 시작해요. 나중에 언제 무엇을 고민하며 적었는지 쉽게 찾을 수 있지요. 정리하자면, 내 업을 스크랩하기에 ‘안성맞춤’인 노트죠.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일에 대한 고민 과정까지 담기 때문이죠. 

Q. 
자주 쓰시는 필기구나 문구가 있으신가요?
회사에서는 ‘모나미 플러스펜 3000 파란색’을 사용해요. 실제로 엔지니어들이 설계 할 때 자주 쓰는 펜이죠. 만년필 중엔 ‘펠리칸 m605’, 세필 만년필 중엔 ‘플래티넘 센츄리’예요. 만년필들은 길이가 다 제각각인데, 짧은 편에 속하는 펠리칸 m605는 제 손 크기와도 잘 맞아서 쓰기 좋아요. 또 ‘플래티넘 센츄리’는 제 생애 첫 구매 만년필이라 그런지 더욱 특별한 애정이 갑니다. 또, 라미 알스타와 홍디안 제품들을 소위 ‘전투용’ 만년필로 사용하고 있어요. 

Q. 
만년필은 아무래도 과정 순서가 있는 필기구잖아요. 그럼에도 자주 쓰게 되는 이유가 있을까요?
만년필을 세팅하는 과정이 즐거워요. 검정, 파랑, 빨강만 쓰다가 폭 넓은 잉크의 세계에 빠져 다양한 색깔의 잉크를 넣어 써 보며 재미를 느끼기도 하고요. 오래 쓰다 보면 촉이 내가 평소 쓰는 방향대로 길들일 수 있다는 점에서 일반펜과는 다른 매력이 있어요. 느리지만 그 ‘과정’이 주는 즐거움이 요즘 더 소중해요. 



Q. 회사에서 주로 쓰는 생활을 하신다고 했는데, 업무 시간 외에도 쓰는 생활을 하시나요?

네. 설교 노트, 스크랩, 일상 기록이요. 몇 년 전에 기술사 필기시험을 준비하면서 많은 양의 공부를 할 때는 매일 쓰는 생활을 하기도 했죠. 서술 위주 시험이었거든요. 특히, 성경 구절이나 읽은 책을 필사하고 있어요. 66권으로 이루어진 성경 중 하나를 택해 통 필사하기도 하고요. 책을 읽으면서 와닿는 문장에 먼저 인덱스 스티커로 표시했다가 다 읽은 후 다시 책을 넘기며 마음에 남은 문장들을 제 필사 노트에 옮겨 적고 있어요. 직접 써 보며 문장을 더 곱씹게 되니 기억에 오래 남고, 또 시간이 흘러 다시 봤을 때 내가 좋아했던 엑기스 문장들만 제 손글씨로 추려져 있어 감동이 배가 됩니다. 



Q. 다양한 쓰는 생활을 하시는 만큼 쓰는 노트도 많이 있을 것 같아요.

무인양품 노트에 3년 일기를 쓰고 있어요. 한 페이지에 총 18줄이 그어져 있고, 하루에 6줄씩 씁니다. 23년 작년 한 해 분량을 다 썼어요. 이제 7번째 줄부터 써요. 작년 오늘 날짜의 기록을 보며 시간 여행을 하는 즐거움이 있고 한 해 한 해 쌓여가는 기록의 누적을 보면 흐뭇합니다.






Q. 꾸준한 쓰는 생활을 할 수 있는 아코더님만의 비법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날짜’를 쓰는 것이요. 쓰기의 물꼬를 터준답니다. 날짜 쓰는 일이 제겐 사소하지만 중요한 루틴이라서, 날짜형 보다는 만년형 다이어리를 선호해요. 쓰는 ‘공간’도 중요한 것 같아요. 사이토 다카시 『메모의 재발견』이라는 책에 ‘퇴근 후의 30분은 카페에서 보낸다’는 말이 나와요. 공간이 비로소 갖춰질 때 잘 쓰게 되는 거죠. 집에 제가 쓰는 생활을 하는 공간을 ‘집현전’이라 불러요. 안방 침대 옆 작은 책상 공간이에요. 


Q. 아코더님이 생각하는 쓰는 생활이 갖는 일상에서의 의미, 가치는 무엇일까요?

능동적으로 살도록 도와줘요. 자연스레 바른 삶이 유지되죠. 바른 삶은 자존감으로도 연결됩니다. 눈에 보이는 기록들이 있으니 더더욱이요.




Q. 오늘의 아코더님을 어떤 쓰는 사람이라 부르고 싶으세요?

‘꿈 많은 쓰는 사람’이라고 하고 싶어요. 회사에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온 동료가 있어요. 제 일기장을 보여준 적이 있는데요. 친구가 채워진 일기장을 보더니, ‘너는 꿈이 많은 사람인 것 같아.’라고 말해준 기억 때문이랍니다. 쓰다 보면 꿈이 많아지고 쓰면서 그 꿈들을 정리하고 결국 그것들을 이뤄가는 것 같아요. 친구에게 그 말을 듣고 나니 쓰는 생활이 제게 더욱 귀하게 다가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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